사진출처(다음)= 티탄
사진출처(다음)= 티탄

2023년 새해가 시작되었다. 지난해에 본 영화를 주욱 돌아보니 꽤 충격적인 영화가 많았는데, 2021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쥘리아 뒤크르노’ 감독의 <티탄, TITANE>도 그 중 하나다.

영화 <티탄>의 한국어판 포스터에는 ‘올해의 미친 걸작’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고, 이는 전혀 과장이 아니다. 영화 <티탄>을 다 본 후 가장 먼저 떠오른 건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의 한 구절이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나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나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아브락사스는 유대교에서 선(善)의 신 야훼와 악(惡)을 대표하는 사탄이 합해진 개념이다. 쾌감과 공포, 남성과 여성, 물리적 사랑과 초월적 사랑, 그 경계는 어떻게 구분 짓는 걸까? 소설 <데미안>에서 ‘아브락사스’라 표현한 걸 이 영화에선 ‘티탄’이라 부른다.

하나이자 여럿이며 개별이자 모두인 전혀 새로운 존재, 피부(껍질)을 벗고 나오는 존재, 그리고 그 존재 곁에는 사랑이 있다. 그 존재를 추앙하고 보호하는 사랑이. 나의 사랑만이 유일하다 느껴질 때 사랑이란 이름으로 행하는 모든 행위에는 ‘당연’이 꼬리표처럼 따라온다.

이윽고 사랑은 종교가 된다. 알렉시아(여성)이자 아드리안(남성)인 존재 ‘티탄’은 ‘최초’이기 때문에 가장 특별해진다. 영화 <티탄>에는 아주 기이한 섹스장면이 있다. 인간과 자동차의 결합이 바로 그렇다.

영화에 대한 호기심이 지금보다도 훨씬 왕성했던 시절 소위 ‘야동’이라 부르는 영상을 한동안 섭렵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 내가 느낀 감상은 인간이란 이토록 다양한 방식으로 더 강력한 쾌락을 추구하려 애쓴다는 것에 대한 감탄이었다.

아니 그건 감탄을 넘어선 공포였다. 인간의 쾌락에 과연 끝이 있을까? 라는 아득함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섹스 상대가 인간만이 아니라는 것, 둘이서만 하는 행위 또한 아니라는 것, 사회적 상식적 선을 넘는 관계에서도 이루어진다는 것, 물리적 폭력과 오물까지 동원되는 장면들을 보다 보면 존재를 향한 감정이 몹시 복잡해진다.

그런데 영화 <티탄>에는 무려 여성(알렉시아)와 자동차(캐딜락)의 섹스 장면이 들어있다. 비유로서의 섹스가 아니다. 사실 <티탄>은 온갖 카테고리의 섹스를 밀도 있고 스피디하게 그린 영화기도 하다.

사진제공(다음)= 티탄
사진제공(다음)= 티탄

알렉시아를 유혹하는 인간은 남성이 되었건 여성이 되었건 모두 그녀에 의해 파괴당한다. 그러나 그녀를 유혹한 자동차와의 섹스는 잉태로 이어지고, 임신한 알렉시아는 아드리안이라는 남성으로 사회적 젠더가 바뀐다.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사회적 관계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해체된다.

엄마의 역할이라 생각했던 일을 아빠가 하고, 폭력의 주체는 여성(알렉시아)다. 알렉시아는 생물학적 아비를 포함한 자신이 속해온 정상가족을 무너뜨리기 위해 집에 불을 지른다. 그 후 새로운 아빠 뱅상을 만나 남성(아드리안)이 되면서 그(그녀)가 가지는 직업은 아이러니 하게도 불을 끄는 일을 하는 소방수다.

새로운 아빠 뱅상은 소방서의 절대자다. 잃어버렸다고 여겨온 아들(아드리안)이 등장하자 그 전까지 아들 역할을 대신해온 충성스러운 한 소방수를 아드리안에세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그를 없앤다. 그때 쓰인 것도 불이다. 불은 뱅상과 아드리안 모두에게 정화의 도구로 쓰인다.

여성 알렉시아로 살던 시절의 직업은 모터쇼의 스트립 댄서로 그때 추는 춤은 보여주기(팔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남성 아드리안으로 살며 추는 춤은 의식(儀式)과 유희로서의 행위다. 새로운 아빠 뱅상은 매일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아가면서까지 근육(남성성/신성)을 지키기 위해 애쓰지만 17년 만에 만난 아들 아드리안(알렉시아)를 위해 그가 하는 모든 일은 전통적인 엄마 모습에 가깝다.

영화의 엔딩, 알렉시아(아드리안)의 출산을 뱅상이 돕는 장면에서 젠더의 전복과 역할의 혁명은 극대화된다. 우리가 지금껏 자연스럽다 여겨온 인간으로서의 정체성과 관계를 영화 <티탄>은 산산이 분해해 조립하고 재창조 한다.

‘티탄’의 어원은 그리스-로마 신화 속 거신(巨神/티탄)에서 유래한다. 영화적으로 볼 때 티탄은 마침내 알렉시아의 뇌를 온통 점유하게 된 티타늄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새롭고 초월적인 존재를 의미한다. 인간이 아닌 존재와 결합한 알렉시아(아드리안)에게 성별이란 그러므로, 정상가족처럼 무의미하다.

새로운 티탄의 출산과 함께 이전의 티탄(알렉시아이자 아드리안)의 역할은 끝난다. 그(그녀)가 인간으로 태어나 티탄과 결합해 티탄으로 죽는 이유는 처음부터 티탄이 아니었다는 태생적 한계일 수도 있고, 최초라는 신화가 되기 위한 필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기는 처음부터 순정한 티탄이다.

영화의 마지막, 두개골 일부와 척추가 티타늄으로 이루어진 아기의 뒷모습이 보인다. 나는 그 아기의 앞모습이 무척 궁금하면서도 동시에 절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런 나의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카메라는 끝까지 아기의 얼굴을 클로즈업하지 않는다.

인간의 본성은 정말로 폭력적이고 파괴적일까? 특히 쾌락의 맛을 본 인간일수록 본능의 힘이 강력해는 걸 자주 목격한다. 그 본능을 제어하는 것이 뇌(이성, 사회적 규범)이라면 뇌의 일부가 티탄으로 바뀐 주인공이 사회적 인간으로 사는 건 불가능하다는 뜻이 될 테다. 물론 이마저도 지극한 인간으로서의 시선이지만. 하긴, 그리스-로마 신화에 보면 이렇게 쓰여있다. 신들은 매우 인간을 닮았다고.

이미지= 수퍼드라이 맥주
이미지= 수퍼드라이 맥주

세상에는 야동 카테고리 만큼이나 다양한 맥주가 존재한다. 특히 우리와 가까운 나라 일본의 맥주 맛은 탁월해 정평이 나있다. 일본 맥주 대표 브랜드 기린, 삿뽀로, 아사히 중, 기린과 삿뽀로가 전통의 강자라면 아사히는 태풍처럼 업계를 평정한 신성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 ‘수퍼드라이 맥주’가 있다.

1980년대에 출시된 아사히 수퍼드라이 맥주는 가볍고 신 맛과 함께 마셨을 때 ‘차가운 이물감’이 느껴진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물감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혓바닥에 차갑게 한 금속성 숟가락을 댄 듯한 감촉으로 입안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낯선 감각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영화 <티탄>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이 바로 이 수퍼드라이 맥주다. 수퍼드라이 맥주를 처음 맛 본 사람들도 금속성의 낯설고 싸늘한 느낌에 몸서리를 치진 않았을까? 수퍼드라이 맥주에 뜨거운 튀김을 매치하는 건,

서로 시너지를 내는 조화로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수퍼드라이의 이물감을 달래줄 온기가 간절해서인지도 모른다. 낯선 자극은 잠시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니까. 역시, 새롭고 초월적인 신급 존재로 사는 것보다는 미숙한 인간으로 체온을 부대끼며 사는 삶 쪽이 나는 더 소중하다.

포스터출처(다음)= 티탄
포스터출처(다음)= 티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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