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면서 원하든 원치 않든 많은 호칭을 부여 받는다. 본인의 경우 딸, 장녀, 누나, 선배님, (아는) 언니, 친구, 쌤 등이다. 이 호칭에 걸맞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적지않게 노력한 것이 내 인생을 관통하는 일 중 하나였다.

그 호칭을 모두 포함한 한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다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사람’으로서의 가치는 주로 경제적인 것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으로서의 경력을 점점 쌓는 동안, 내가 돈을 벌고 부모님의 가장 기초적인 지원을 조금씩 벗어나는 것 만으로도 성인이 된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어느 정도는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고 싶은 것을 일찍 찾아 공부하고, 그것으로 돈을 벌고 있는 사실 자체만으로 그렇게 무가치 하진 않다고. 더 높은 가치를 위해선 딸로서, 누나로서, 사회인으로서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해야한다고, 일에 점점 지쳐가고 지겨워진다는 생각이 들면 참 너는 욕심도 크다...라고 생각했다.

그랬던 내가 코로나19로 인해 일자리를 잃고 집에만 있을 때, 나는 마치 처음부터 돌봄이 필요한 아기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몸도 정신도 서른 한살을 그대로 유지한 채.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주 진지하게 내 삶에 대해 고민해보았다.

내가 여기던 가치는 사라졌다.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백수가 되었고, 기초적인 부분을 부모님께 의지하기 시작했다. 열심히 현장에서 뛰던 내 모습은 없다. 주위를 둘러보니 새롭고 낯선 것 뿐이다. 그것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필요할 거 같았다. 그 시간 동안 나의 가치는 없어보였다.

나는 이제 무엇을 위해 살아야하나? 사회적 구성원, 가족 구성원으로서 내 가치는 사라진 것처럼 보였고 그걸 깨달은 순간 아득한 구덩이 속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마치 검은 가루에 뒤덮인 22처럼. 검은 모래 폭풍에 휩싸여 눈을 꼭 감고 좋지 않은 말만 중얼거리는 22는 무기력증에 잠식된 나의 모습이었다. 그 짙은 모래 구덩이 속에서 영화 '소울'은 나를 구원하기 위해 내밀어준 수많은 손들 중 하나였다.

'소울'에서 주인공 ‘조’는 하고 싶은 걸 하지 않으면 인생의 의미가 없다고 외친다. 하지만 결국 목표를 이뤄도 또 똑같은 삶이 반복된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한다. ‘인생은 고통이고 끊임없이 행복한 걸 찾아내려는 과정’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나와 몹시 닮아있다.

'소울'은 그런 내 꽉 막힌 생각을 녹여버린 영화였다. 아주 일상적인 소리, 맛, 냄새 등을 모으고 모아 정말 소중한 보석처럼 내 코앞에 들이민다. 그걸 빤히 바라보고 있는 나는 화살을 맞은 듯 화들짝 정신이 깬다. 왜 꼭 하루를 특별하게 보내려고 노력했지?

나라는 사람은 누군가에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사람인데 왜 나의 가치를 돈으로만 여겼을까? 그리고 왜 나의 가치를 다른 사람이 저울질 하도록 내버려뒀을까? 그저 내가 지금 당장 몸을 움직여서 뭐라도 한다는 것이 중요한데...

그걸 깨달은 순간 날 감싸던 모래폭풍이 사라졌다. 완전히 사라졌다고는 할 수 없지만 충분히 그것을 무시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그리고 나는 지금 조금씩 정신적 건강을 찾아가는 중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울'은 나에게 참 고마운 영화다.

가장 무가치하게 느껴졌던 시기에,  "너의 가치는 돈으로 메길 수 없어. "라고 생생히 말해주었으니까. 혹시나 코로나 블루를 느끼고 있거나, 우울감이나 무기력에 빠져있다면 이 영화 강력 추천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바로 당신이니까.

스틸 컷= 소울
스틸 컷= 소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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