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5회 유럽영화상 여우주연상, 58회 시카고국제영화제 실버휴고 퍼포먼스상, 66회 런던국제영화제 작품상을 받은 영화 <코르사주>를 통해 바라본 인간의 "단독성”

스틸 컷= 코르사주
스틸 컷= 코르사주

‘다름’과 ‘틀림’을 구분해서 설명하고 사용하는 걸 강박적으로 하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예민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분위기는 조금 느슨해진 느낌이다.

그만큼 한 가지 방향과 목적을 쫓으며 살아온 시간들이란 방증이기도 하다.

열녀가 많은 시절엔 열녀문을 세우는 문화가 성행할리가 없고, 연상연하 커플이 많은 시기에는 그런 커플이 이슈가 될 리가 없다. 우리 사회는 잘 먹고 잘사는 게 모두의 목적인 시대를 살아왔다.

'흩어지면 죽는다'는 일념으로 한 방향 한뜻을 가지고 새마을 운동을 하면서 얻게 된 것은 ‘동일한 기준’과 ‘동일한 목표’다. 그래서 우린 줄 세우고 비교하기 편한 세상에 살게 되었다.

모두가 같은 걸 바라고, 모두가 우러러보는 걸 거부하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아야 정상이란 사고도 함께 말이다. 우리는 그렇게 타인의 취향과 개별성과 단독성을 재단하며 살아가고 있다. 먹고 살만해진 오늘날까지도 말이다.

철학자 강신주는 공대출신이다.

사진출처= SBS, Who am I에서 강연 중인 철학자, 강신주
사진출처= SBS, Who am I에서 강연 중인 철학자, 강신주

글 쓰는 걸 좋아했다는 그가 강연과 책에서 자주 언급하는 시대상은, 장남은 공대를 나와야 한다는 것. 엄마 친구의 말에 자식 몰래 문과, 이과를 바꿔버린 부모를 강신주는 원망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전공에 맞춰 취직을 했는데 문고리를 잡을 때마다 정전기를 느껴서 퇴사를 했다는 말을 자주 한다. 강신주는 먹고사는 문제보다 정전기를 견딜 수가 없었다.

일견 ‘장난치나~’ 싶기도 하고, ‘이야깃거리’를 만들었나 하는 생각도 드는 일화지만, 그에게 정전기는 비유가 아니라 진짜였다고 강조한다. ‘강신주의 정전기’는 심리적인 저항감이 만들어낸 물리적인 반응이었을 것이다.

자식이 잘 먹고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길 바라는 못 배운 어미의 자식 사랑이었지만, 결국 그의 신체는 삶 전반의 욕망을 드러내고 참을 수 없는 현실을 몸의 반응으로 드러낸 것이다.

2023년 전 세계는 고물가, 고금리로 몸살을 앓고 있다. 언제 끝이 날지 모르는 암담함 속에서 한동안 뜨겁게 달구던 ‘투자’나 ‘욜로’, ‘파이어족’ 같은 말들은 씨가 말라버렸다.

대신 다시 시작된 ‘무지출 챌린지’와 ‘현금채굴’이라 불리는 월급이 최고라고 하는 시대가 도래 했다.

스틸 컷= 코르사주
스틸 컷= 코르사주

 

역시 인간 생존의 필수요소는 돈이다.

우선 필수요건들이 채워지지 않는 전쟁국가나 기아 사망률이 높은 국가에서 ‘행복’처럼 사치스러운 단어는 저주의 대상일 수밖에 없을 테니까. 하지만 수입이 늘면 행복지수도 함께 우상향하는 구간도 한계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결국 어느 정도 주린 배를 채우고, 안전과 안정이 담보된다면 자연스럽게 각자의 개성과 취향과 소망에 집중하게 되는 게 인간 존재의 종특이다.

‘정승도 저 싫으면 그만이다’는 속담은 배고픈 사람에게는 사치스럽게 보인다.

아주 오래전에 대한민국 굴지의 대기업 막내딸의 비보가 들려왔을 때, 언론에서는 자신의 사랑을 인정해주지 않는 부모에 대한 반항심 정도로 보도를 했고, 많은 사람들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그녀의 선택에 충격을 받았다.

스틸 컷= 코르사주
스틸 컷= 코르사주

비슷한 예로 돈많고 유명한 연예인들의 자살 뉴스들도 그들의 삶을 꿈꾸는 많은 필부필부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선택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각자의 이유들은 참을 수 없는 '정전기'였을 것이다.

사람은 먹어야 사는 동물이기도 하지만 카테고리로 묶을 수 없는 다양한 내면을 가진 단독자들이기도 하니까.

영화 <코르사주>의 주인공 엘리자베트는 ‘씨씨’라는 애칭으로도 유명한 오스트리아의 황후다. 아름다움과 권력을 모두 가진 그녀는 지금도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 있는 벨베데레 궁전에 남아있다.

클림트의 <키스>가 전시돼 있는 궁전은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싶어 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 아름답고 거대한 궁전의 주인공은 다양한 작품으로 변주되며 여전히 논란과 사랑의 중심에 있으며 그녀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관객들에게 다양한 반응을 일으킨다.

스틸 컷= 코르사주
스틸 컷= 코르사주

여자감독 마리크로이처가 연출한 '잘난 여자' 씨씨의 이야기 <코르사주>는 ‘시대’와 ‘자리’와 ‘전통’의 억압의 표상으로 허리사이즈를 줄이는 코르사주를 제목으로 잡았다. 씨씨에게는 삶 전반이 코르사주에 묶인 기분이었음을 상징하듯 말이다.

살이 찌면 언론에 오르내리는 대상이기에 거의 못 먹고, 코르사주를 하면 숨쉬기조차 힘들어서 물속에서 숨 참는 연습을 해야 하는 삶.

타인의 눈에 아름다움의 표상이자 왕실의 얼굴 노릇을 해야 하기에 1kg짜리 가발을 쓰고 인형처럼 웃어야 하는 시간 속에서 “숨쉬기 위해” 기행(奇行)을 반복하는 영화의 러닝타임은, 어느 누구의 시선에서는 배불러서 하는 투정 정도로 보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삶의 모든 순간에 정전기가 아니라 전기충격을 받는 느낌으로 살아야 하는 그녀의 괴로움은 달리고, 뛰어내리고 도망치고를 반복하게 한다.

스틸 컷= 코르사주
스틸 컷= 코르사주

물론 삶에 대한 애착과 제 자식에 대한 연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살고 싶어서 ‘포기’와 ‘죽음’을 선택하게 되는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작품은, 한 인간에 대한 연민을 불러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인간은 모두가 다르다.

혈액형 4가지로 인간을 나누고, 요즘엔 MBTI 16가지로 분류하는 게 유행이다. 혈액형 4가지보다야 16가지로 나누는 MBTI는, 조금 더 세밀하게 나누는 거라 좀 나은 것인가?

 

하지만 각자를 나눠서 카테고리로 묶는 건 누구에게 유용한 것일까?

그냥 모두가 다르게 생각하고 모두를 존중하는 건 불가능한 것일까?

어딘가에 속한다는 소속감은 인간의 행복의 한 조건이다. 하지만 동질감에 묶이기 보다는 서로를 존중하는 다른 사람들끼리의 만남도 ‘혼밥’이나 ‘혼술’을 즐기며 ‘혼영’, ‘혼여’를 추구하며,

충직하게 자신을 죽을 때까지 배신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반려동물이나 식물을 끼고 살아가는 것이 최선인 걸까? 우리가 서로 말 통하는 사람들과 다독거리며 살게 된다면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모든 걸 다 가졌지만 자신이 가진 모든 것에 눌려 행복하지 못했던 씨씨의 삶을 보면서 지금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보는 시간이다.

.

.

.

.

(참, 나는 ENTJ...;;)

포스터= 코르사주
포스터= 코르사주

 

저작권자 © 무비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