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프라하의 봄>과 체코 맥주 '필스너 우르켈'
- 왓챠와 웨이브를 통해 관람 가능, 단 웨이브에서는 성인 인증을 통해야만 시청 할 수 있어

사진출처(다음)= 프라하의 봄
사진출처(다음)= 프라하의 봄

누구나 죽기 전에 한번쯤 가보고 싶은 도시가 있다. 내게는 그 곳이 체코의 프라하다. 계절은 봄이었으면 좋겠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가장 큰 하나는 영화 <프라하의 봄> 때문이다.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의 당 제 1서기였던 둡체크와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자유화 운동을 ‘프라하의 봄’이라 한다. ‘필립 카우프먼’ 감독의 영화 <프라하의 봄>은 체코 작가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를 원작으로 만든 작품으로, 영화 제목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 1968년의 체코가 배경이다.

‘밀란 쿤데라’ 또한 ‘둡체크’가 내세운 자유화 정책인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한 바가 있었고, 덕분에 그의 소설들은 체코에서 대부분이 금서로 지정된다. 쿤데라는 결국 프랑스로 이주하게 되는데 그때 쓴 작품이 바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다.

외과 의사 ‘토마스(다니엘 데이 루이스)’, 사진작가 ‘사비나(레나 올린)’, 그리고 ‘테레사(줄리엣 비노슈’), 이 세 명을 둘러싼 사랑과 존재의 의미를 그린 이 영화가 처음 공개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원작을 제대로 살리지 못 했다며 혹평했다.

과연, 원작이 지닌 철학적이고 실험적인 전개와 내용에 비해 스토리 라인을 토마스와 테레사의 러브 스토리에 무게를 두고서 이를 카우프먼 감독 특유의 에로틱하고 탐미적으로 그린 이 영화에게 원작과 비교해 그런 평가가 내려진 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원작을 떼어놓고 보자면 주연을 맡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세 남녀의 삶을 따라가는 카우프만 감독만의 수려한 리듬감, 게다가 체코의 작곡가 야나체크의 음악까지(원작 소설에서는 베토벤의 곡이 등장), 밸런스가 뛰어난 명작으로 나를 포함한 많은 영화인들의 사랑을 꾸준히 받아온 것 또한 사실이다.

영화가 원작의 의미를 잘 살리는 건 매우 가치 있는 작업임에 틀림이 없지만 영화 <프라하의 봄>은 원작과는 별개로 많은 미덕을 가진 작품이다. 삶은 내게 너무 무거운데 당신(토마스)에게는 너무도 가벼운 것 같다고 말하는 테레사는 결국 한 통의 편지를 남겨두고 스위스 제네바의 토마스를 떠나 고국으로 돌아온다.

테레사와는 너무도 다른 삶의 태도를 가진 토마스였지만 테레사의 편지를 읽은 그는 다시 테레사의 곁으로, 즉 무거운 삶의 길로 들어선다. 둘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삶이 희극인지 비극인지, 사는 동안 하나로 특정하기란 어렵다. 아니, 죽음의 방식이 비극이라 해서 그 삶 전체를 비극이라 단정하는 건 안 될 말이다. 동전의 양면처럼 희극과 비극이 함께 붙어있는 삶,

어쩌면 삶이라는 이름의 동전은 굴러가는 동안이 가장 평화로운 건지도 모른다. 굴러가던 동전이 어느 면을 위로 하고 쓰러질지 누구도 모르기 때문에 그저 힘껏 앞으로 굴러가기만 하면 될 테니.

68년 프라하의 봄 이후 체코가 소련의 압제에서 벗어나 비로소 민주화를 달성한 것은 1990년의 일이다. 그 해 최초로 프라하의 봄 축제가 개막되었는데, 전야제 행사로 열린 ‘프라하의 봄 콘서트’에서 체코의 관현악단이 ‘몰다우’를 연주할 때 너나 할 것 없이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미지= 체코 맥주 '필스너 우르켈'
이미지= 체코 맥주 '필스너 우르켈'

22년 만에 되찾은 진정한 프라하의 봄이 마침내 모두의 마음에 활짝 꽃을 피운 것이다. 실제 프라하의 봄은 ‘안톤 체홉’의 희곡 제목처럼 벚꽃 동산이 무척 아름답다고 한다. 프라하의 봄, 벚나무에서 쏟아지는 분홍 꽃비를 맞으며 마시는 한 잔의 필스너 맥주는 얼마나 맛이 좋을지 상상만 해도 행복해진다.

특히, 체코만의 고전 방식으로 양조된 하면 발효 맥주인 '필스너 우르켈'을 드래프트로 마시고 싶다. 몰트와 씁쓸한 홉의 맛이 조화로운 필스터 우르켈은 세밀하고 풍부한 순백의 거품이 아주 매력적인 맥주로 이 거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원뿔 모양의 전용 글라스를 권하지만 손잡이가 달린 뚱뚱한 저그로 마셔도 풍부한 향과 푹신한 거품을 즐기기에 모자람이 없다.

필스너 우르켈은 앞서 언급했던 것과 같이 크림같은 거품이 매력적인데, 거품의 양에 따라 맥주를 부르는 이름이 달라진다. 100% 거품으로만 잔을 채운 것을 ‘밀코’라 부르고 거품을 35ml로 채운 것을 ‘크리스피’라 한다.

어느 봄날 프라하의 노천 펍 야외 테이블에 앉아 하얀 구름을 채운 것 같은 ‘밀코’를 주문해 마셔보고 싶다. 눈이 마주친 누구와라도 ‘나즈드라비(NA ZDRAVI)’ 라고 외쳐야지. 아, 나즈드라비는 체코어로 ‘건배’라는 뜻이다.

이미지 출처(다음)= 프라하의 봄
이미지 출처(다음)= 프라하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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