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자와 공주는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을까?

사진(다음 출처)= 귀여운 여인
사진(다음 출처)= 귀여운 여인

엄마가 좋아하는 영화가 있다. 몇 번씩 본 영화임에도 TV에서 방영 해주면 또 볼 정도로 애정하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로마의 휴일>, 그리고 1990년 ‘게리 마샬’ 감독의 <귀여운 여인>이다.

세 편 다 우여곡절 끝에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여성의 이야기로 여심을 저격하는 장면도 많은데다가 영화 음악이 뛰어나며, 주인공을 맡은 배우가 매력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영화 <귀여운 여인>으로 당시 무명에 가까웠던 배우 ‘줄리아 로버츠’는 영화에서처럼 헐리우드의 ‘신데렐라’가 되었고, 연이은 흥행실패로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던 ‘리처드 기어’는 헐리우드 최고의 로맨티시스트로 등극했다.

원래 <귀여운 여인>의 대본은 비참하고 비극적인 결말로 끝나는 것이었다고 한다. 처음 이 영화를 준비하던 영화사가 문을 닫게 되면서 이 시나리오를 브에나비스타(디즈니)가 넘겨받았고, ‘게리 마샬’이 매거폰을 잡으며 지금의 <귀여운 여인>이 탄생한다.

제작비도 그리 많이 들지 않았던 영화라 큰 수익을 기대하지 않았으나 말 그대로 ‘초대박’을 터뜨리며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영화가 되었다. 줄거리는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가 맞다. 심지어 영화 속에서 신데렐라가 직접 언급되기도 한다.

하지만 단순하게 이 영화를 밑바닥 삶을 살던 거리의 여자와 가장 비싼 방인 펜트하우스가 호텔 꼭대기에 있다는 이유로 고소 공포증에도 불구하고 펜트하우스만을 고집하는 부자남자의 통속적인 사랑 이야기로만 보기에는 이 영화가 품은 매력은 차고 넘친다.

무엇보다 팔 것이 내 몸밖에 없는 사람이라 해서 마음과 자존심까지 쓰레기통에 처넣을 수는 없다는 것과, 사랑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현현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사랑은 물질로 인해 아름답게 포장되고 풍요롭게 표현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국 마음의 문제가 아닌가.

사진(다음 출처)= 귀여운 여인
사진(다음 출처)= 귀여운 여인

영화 <귀여운 여인>에는 멋진 OST와 함께 눈을 즐겁게 하는 명장면도 꽤 많은데,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자면 ‘에드워드(리처드 기어)’가 ‘비비안(줄리아 로버츠)’를 데리고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보기 위해 오페라 하우스에 가는 장면이다.

오프 숄더의 아름다운 레드 드레스를 입고 객석에서 오페라를 기다리는 비비안, 그러나 비비안에게 오페라는 생전 처음 마주하는 문화다. 게다가 모르는 언어로 공연되는 오페라를 앞두고 과연 자신이 이해할 수 있을지 긴장을 한다.

언어를 모름에도 마음으로 관람을 하고 감동으로 눈물을 흘리던 비비안의 모습에서 관객들은 어쩌면 이미 이 영화의 ‘해피엔딩’을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는 신분이 다른 두 남녀의 러브스토리를 그린 작품으로 유감스럽게도 비극으로 끝난다. 하지만 영화는 오페라와는 달리 탑에 갇힌 공주를 무사히 구하는 왕자가 등장하는 동화처럼 행복하게 막을 내린다.

 

동화의 마지막은 늘 왕자와 공주는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지만 과연 에드워드와 비비안의 삶도 그러했을까? 글쎄. 과연 사랑이 영원해야만 가치 있는 걸까? 별처럼 반짝이는 순간을 지금 함께하고 있다는 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삼십대 초반, 당시 교재하고 있던 애인의 초대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이 공연하는 ‘라 트라비아타’를 관람했던 추억이 내게도 있다. 비비안처럼 붉고 긴 드레스는 아니었지만 블랙의 칵테일 드레스에 그가 생일선물로 준 예쁜 목걸이를 걸었다.

인터미션 시간에 로비로 나오니 테이블 위에 반짝이는 버블이 글라스 아래서 끊임없이 올라오는 샴페인 글라스가 가득 놓여있었다. 글라스를 부딪치며 그와 오페라 이야기를 나누던 그 순간만큼은 사랑의 영원성을 믿었던 것도 같다. 아니, 믿고 싶었다는 쪽이 정확 하려나.

그 시간, 그 장면에, 샴페인만큼 어울리는 술은 감히 없다고 단언한다. 오로라처럼 회오리를 그리며 올라오는 반짝이는 기포, 좁고 긴 글라스의 엘레강스한 라인, 투명한 액체 너머로 투영되는 행복의 시퀀스, 그 순간 이미 진정한 사랑을 찾은 신데렐라가 된 기분이었음을 고백한다.

세상에는 아주 많은 종류의 스파클링 와인이 존재하나 오로지 프랑스 상파뉴 지방에서 생산된 것만 ‘샴페인’이라 불릴 자격을 갖는다. 상파뉴 지방은 평균기온이 낮은 곳으로 포도를 재배하기 적합한 기후는 아니지만, 오히려 이런 조건 덕분에 우아한 산미와 화사한 아로마, 세심한 거품을 지닌 와인이 탄생하게 되었다.

와인 애호가가 아니라도 ‘돔 페리뇽’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상파뉴 지역의 오빌레 베네딕토 수도원의 수도사였던 ‘돔 페리뇽’은 와인제조 책임자였는데, 상파뉴 지역의 추운 날씨 때문에 와인 발효가 멈췄다가 기온이 온화해지는 봄에 다시 발효가 시작되면서 터져버린 와인을 보고 스파클링 와인을 연구하기 시작했으며 ‘돔 페리뇽’은 샴페인의 대명사가 되었다.

샴페인은 축하 자리에 자주 등장하는 술이기도 하다. ‘영원’이라는 건 사랑에서도 샴페인에서도 끝내 허망한 환상으로 사라질지는 몰라도 환상의 맛을 딱 한 번만 경험하고 삶을 마치기에는 아쉬운 존재임에 분명하다. 십 수 년이 지났음에도 오페라 인터미션 시간에 마셨던 샴페인의 기억을 여전히 잊지 못 하는 나만 보아도 말이다.

아, 그날 마신 샴페인은 상큼한 노랑색 레이블로 유명한 ‘뵈브 클리코’로, 코르크만으로 샴페인을 구별하던 시절, 전기가 없어 촛불만으로는 샴페인을 구별하기 어려워 이를 식별하기 위해 마담 뵈브 클리코는 노란색 레이블을 부착했고, 이 노랑색 레이블은 지금까지도 뵈브 클리코의 아이덴티티가 되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무비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