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다음)= 오션스 13
사진출처(다음)= 오션스 13

‘케이퍼 무비(Caper movie)라는 장르가 있다. 범죄 영화의 하위 장르 중 하나로, 무언가를 강탈 또는 절도 행위를 하는 모습과 과정을 상세히 보여주는 영화를 의미한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오션스 시리즈'가 대표적인 케이퍼 무비라 할 수 있으며, <오션스 11>을 시작으로 <오션스 12>, <오션스 13>으로 이어지는 세 편의 영화는 현대 케이퍼 무비에 짙은 한 획을 그은 뛰어난 시리즈로 평가 받고 있다.

사기 혐의로 감옥에 수감되어 있다 가석방으로 풀려난‘대니얼 오션(조지 클루니)’는 제 천직(?)을 버리지 못 하고 풀려나자마자 한 탕 할 계획으로 뇌를 활성화 시킨다. 그리고 미국 각 지에 흩어져 있던 사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동료들을 카지노의 성지 라스베이거스로 불러들인다.

그렇게 시작한 오션과 그 일당들이 흥미진진한 사기행각을 벌이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는 회를 거듭할수록 인원이 한 명씩 늘었고(오션스 12의 줄리아 로버츠, 오션스 13의 앤디 가르시아 & 에디 아자드), 초호화 캐스팅도 캐스팅이지만 탄탄한 시나리오와 호쾌한 연출 덕분에 오션스 시리즈가 이어지길 바라는 팬 층은 나를 포함해 매우 두터웠다.

그러나 <오션스 13> 이후, 뛰어난 딜러 기술을 활용해 사기에 가담하는 캐릭터인‘프랭크 캐튼’역의 배우 ‘버니 맥’이 사망하자 버니 맥이 없는 오션스 시리즈는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배우들이 다음 시리즈를 거절하게 되면서 <오션스 14>가 만들어질 가능성은 애석하게도 사라지게 되었다.

어느 분야에서든 최고가 모이면 상상도 못 할 일들이 여름밤을 수놓는 거대한 불꽃놀이처럼 팡팡 터지는 법이다. 매력적인 악당 오션과 그 일당들에겐 무려 사기 철학(?)이 있다.

첫째는 인명을 해치지 말 것,

둘째는 무고한 사람의 금품은 손대지 말 것,

마지막으로는 이 번 사기가 마지막인 것처럼 최선을 다해 임할 것.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그들이 벌이는 일이 분명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뭐랄까 황홀하고 통쾌한 심정이 되어 응원까지 하게 되니, 오션과 일당들은 영화를 보는 관객의 마음마저 한 탕 크게 털어갔음에 틀림이 없어 보인다.

 

아아, 이 시리즈를 다시 볼 수 없다니…… 진심으로 애석하기 짝이 없군요!

 

워낙 털어야 할 대상이 어마어마한 거물급이다 보니 사기 스케일도 그에 걸맞게 오션즈 시리즈의 캐스팅만큼이나 호화스러운데, 한 예로 시리즈의 끝판 왕이자 마지막 작품인 <오션스 13>에는 ‘샤또 디켐’이라는 엄청난 와인이 등장한다.

사진= 와인 '샤또 디켐'
사진= 와인 '샤또 디켐'

과거에는 와인을 담그기 위한 포도의 수확시기 결정은 소유주인 영주의 신성한 권한이었다. 1860년 프랑스의 샤또 디켐의 영주는 포도 수확 전 먼 길을 떠났다가 일정이 늦어지는 바람에 포도 수확 시기를 놓쳐 포도가 과 숙성을 넘어 시들고 말라버렸다.

이 포도를 폐기하려다 아까운 마음이 들었는지 포도주를 담갔고, 나중에 보니 그 향과 맛이 깜짝 놀랄 만큼 달고 뛰어났다고. 바로 이것이 ‘마시는 황금’이라 불리는, 세계 3대 귀부와인의 여왕 ‘샤또 디켐’이다.

귀부와인이란, ‘보트리티스’라는 곰팡이 균에 의해 포도 알의 수분이 증발하고 그로 인해 당도가 높아진 포도송이들만 손으로 직접 수확해 만든 스위트 와인으로,

그 중에서도 샤또 디켐은 한 그루의 포도나무에 한 잔의 와인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로 희소하며 그 해의 작황이 좋지 않아 수준 미달이라 판단되면 와인을 만들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여담이지만 1952, 1972, 1992, 2012년은 생산을 아예 포기한 해인데, 20년마다 끝자리가 2인 해에 찾아오는 저주라고도 한다. “샤또 디켐의 맛과 향을 묘사하기 위해서는 최상급 형용사를 모조리 동원해도 부족하다.”

이런 평이 있을 정도로 독보적인 향미를 갖춘 샤또 디켐은, 2011년 영국 런던 리츠칼튼 호텔에서 있었던 경매에서 1811년산 1병이 무려 7만5천 유로에 낙찰되어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는데, 이는 한화로 환산하면 1억 3천만 원에 달한다.

샤또 디켐은 <오션스 13> 외에도 영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에 등장한 적이 있고, 미국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과 ‘조지 워싱턴, 가깝게는 북한의 ‘김정일’과 ‘김정은’ 주석이 짝으로 쌓아놓고 마시는 와인으로도 이름이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설탕을 조금도 넣지 않은 스위트 와인 샤또 디켐의 맛과 향은 어떨까? 샤또 디켐에 쓰이는 포도는 프랑스 보르도의 대표 화이트 품종인 세미용(80%)과 소비뇽블랑(20%)으로 구성되고, 빈티지가 어린 샤또 디켐은 맑은 황금빛을 띄며 새콤달콤한 맛에 쌉싸름한 뒷맛이 감돈다.

20년 이상 숙성하면 이 쌉싸름한 맛이 사라지면서 잘 익은 파인애플과 살구, 망고, 리치 등의 열대과실을 비롯해 오렌지 마말레이드, 헤이즐넛, 크림 뷔를레, 코코넛, 바닐라, 메이플 시럽, 솔티 카라멜, 버터스카치 캔디 등 누구라고 사랑에 빠질 듯한 고급스러운 달콤함이 특징이다.

특히 샤또 디켐을 비롯한 소테른 지방의 귀부와인에는 지푸라기 향과 같은 특유의 향이 감도는데 이 향이 푸아그라 요리와 매우 잘 어울려 절묘한 마리아쥬를 이루기 때문에 프렌치 파인 다이닝 코스에 자주 등장한다.

우연이 포도수확 시기를 놓쳐 뒤늦은 수확이 부른 행운의 이 한 병이 곧바로 오픈 하지 않고 오래오래 숙성해 늦게 열수록 뛰어난 와인이 된다는 사실은 한 해를 마감하고 새 해를 맞이하는 이 시기에 각별한 울림을 주는 듯하다.

작은 일은 신속하게 그러나 큰일은 찬찬히, 나무만 볼 것이 아니라 숲을 보라는 건 이런 경우에 해당하는 말 같기도 하다. 2021년 마지막 밤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한 잔의 샤또 디켐처럼 달콤한 꿈을 꾸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2021년 마지막 칼럼의 마침표를 찍는다.

포스터= 오션스 13
포스터= 오션스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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