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찌의 집에 더 이상 구찌가 살지 않는 이유
1990년 ‘게리 마샬’ 감독의 영화 <프리티 우먼>에서는 거리의 여자 ‘비비안(줄리아 로버츠)’가 우연히 독신 사업가 ‘에드워드(리처드 기어)’를 만나면서 계약 연애를 하게 된다.
에드워드와 함께 호텔의 펜트하우스에 머무르는 동안 촌스럽고 경박하기 짝이 없었던 비비안이 점점 세련되고 우아한 모습으로 변화하는 것을 보며 흐뭇했던 기억이 있다.
특히 영화 속에서 호텔 바(bar)에 앉아 에드워드를 기다리던 비비안이 입고 있던 블랙 컬러의 칵테일 드레스 자태가 너무도 근사했는데, 훗날 그 드레스가 ‘구찌’ 제품임을 알게 되었다.
“처음부터 빠졌던 그 이름 구찌. 내 것이 될수록 더욱 갖고 싶었던 이름, 누구에게도 뺏길 수 없었던 그 이름 구찌를 갖기 위해 구찌를 죽이기로 결심했다.”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의 오프닝에 등장하는 말이다.
영화 <프리티 우먼>에서 누추했던 비비안은 구찌의 드레스도 입고 마침내 왕자(에드워드)의 진정한 사랑까지 입게 된, 현대판 신데렐라 스토리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가 영화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실제 구찌 패밀리의 후계자이자, 디자이너 ‘톰 포드’를 영입하며 구찌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운 장본인인 ‘마우리치오 구찌’와 그의 전부인 ‘파트리치아’의 결혼 또한 현실판 신데렐라 스토리라 해도 될 정도의 세기의 로맨스였다.
평범한 여자와 사랑에 빠진 귀공자,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해 예쁜 딸까지 낳았으니 구찌와 파트리시아의 러브 스토리는 어쩌면 두고두고 회자될 ‘해피엔딩’으로 남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동화나 영화 같을 수는 없었는가 보다. 인간의 허영심,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는 욕망, 좋은 것을 보면 빼앗고 싶은 욕심은 구찌 패밀리 모두를 더럽히고 파괴하기 시작한다.
남편에게 새 연인이 생겨 13년 만에 이혼하게 된 마우리치오 구찌를 향한 파트리시아의 애증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깊었고, 마침내 그녀는 ‘가질 수 없다면 파괴해 버리겠다.’는 심정으로 전남편을 청부살해 한다.
마우리치오 구찌의 사망 후에도 브랜드 구찌의 가치는 더욱 거대해졌으나 패밀리 비즈니스를 내세우던 브랜드 구찌에 ‘구찌’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현재 아무도 남아있지 않다.
파트리시아의 한(恨)이 그만큼 독했던 걸까?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며, 구찌로부터 구찌를 내몬 건 구찌 패밀리 자신들이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웠다.
그런 말도 있잖은가, 인간의 어리석음은 끝이 없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믿음이 욕심을 누르는 힘보다 권력과 재산을 자기만의 것으로 거머쥐려는 욕심이 더 강력했고, 그런 저마다의 욕망 앞에서 신뢰는 한낱 밀물 시간의 바닷가에 세워진 모래성일 뿐이었다.
구찌를 향해 총의 방아쇠를 당긴 건 파트리시아가 맞지만 방아쇠 때문에 구찌 패밀리가 산산조각이 난 것은 아니었으니까.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를 보는 동안 이태리 마피아 패밀리의 흥망성쇠를 그린 ‘프란시스 드 코폴라’의 작품 <대부>를 떠올렸다. 조직원 모두에게 ‘대부’라 불릴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진 보스 ‘돈 코를리오네’는 사실 ‘돈’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지 않았다.
그의 뒤를 이은 막내아들 ‘마이클’ 또한 조직의 사업을 함께 할 마음이 처음에는 없었다. 그랬던 마이클이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조직에 뛰어든 후 갈수록 비정해져 가는데,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 속 ‘마우리치오 구찌’의 모습에 마이클이 오버랩 되었다.
영화의 배경이 이태리여서 이기도 하지만, 마우리치오 구찌도 마이클처럼 처음에는 패밀리 사업을 이어받을 생각이 없던 순수한 법학도였다.
그런 그가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가족을 이루며 ‘욕망’에 눈 뜬 후, 사업의 정점에 선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다른 이를 아무렇지 않게 속이고 망가뜨린다.
심지어 가족마저도.
구찌 패밀리의 일대기를 닮은 영화 <대부>에는 대부 ‘돈 코를리오네’가 커다란 얼음을 넣은 올드패션드 글라스에 위스키와 이태리 리큐르를 섞은 술을 마시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것이 바로 칵테일 ‘갓파더(Godfather, 대부)’로 이 영화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스카치위스키를 베이스로 아몬드 향이 나는 달콤한 이태리 리큐르 아마레또를 2대 1로 섞어 만들며 가니시로 오렌지 트위스트나 시나몬 스틱을 쓰기도 한다.
알다시피 위스키는 도수가 높은 증류주고 아마레또는 향과 맛이 달콤한 리큐르이지만 알코올 도수가 30도가 넘는다. 두 술의 밀도가 다른 덕분에 주로 글라스에 바로 술을 따르는 ‘빌드’ 방식으로 칵테일을 만들며,
글라스 위에 떠있는 위스키 향이 먼저 느껴지다 아마레또의 단 맛이 그 뒤로 감돌아 위스키의 쓴 맛을 잡아주게 된다. 이 때 조명에 글라스를 비추어보면 얼음이 녹으며 섞인 두 가지 술이 물결처럼 아름답게 넘실거리는 모습을 육안으로 볼 수 있다.
마치 대부의 인생처럼 첫 맛은 쓰고 뒷맛은 달게 표현한 것이라 하는데, 그래서인지 ‘갓파더’는 남성들이 특히 선호하는 칵테일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건, 칵테일 ‘갓파더’에서 위스키를 프랑스 증류주인 꼬냑으로 바꾸면 ‘프렌치 커넥션’이 되고, 보드카로 바꾸면 ‘갓마더’가 되며, 생크림과 같은 헤비 크림을 넣으면 ‘갓차일드’가 된다.
위 네 가지 칵테일을 죄다 마시면 어떻게 될까? 당연한 말이지만 취해서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가족이 함께 할 때에도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기로 하자. ‘아름다운 거리’는 패밀리에서도 통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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